공무도하 - 김훈

1. 관계, 사연 그리고 사람

문정수는 기자입니다.
많은 사건이나 사고를 경험합니다. 취재를 하며 안으로 비집고 들어갈수록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을수록 그들의 사연을 알아갑니다. 사람을 닮은 사연들은 각자의 색을 갖고 명멸합니다. 간척되어 마르는 해망지역 못의 물고기처럼 살아 꿈틀거리고 모두가 그냥 넘길 수 없을 만큼 나름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자는 그 사연들을 묻어야 합니다. 신문이 브리태니커가 되는 일은 막아야 하니까요. 기사가 되는 것은 사연을 배제한 무채색의 사실들 입니다. 이런 무채색의 사연들은 일기예보 보다 감흥을 주지 못합니다. 짧은 탄식이나 동정의 대상이 될 뿐이죠.

임금님 귀의 비밀을 알아버린 사람의 심정으로 문정수는 체한 듯 걸려있는 사연들을 노목희에게 이야기하면서 풀어냅니다. 묻어도 자꾸 살아나는 사연들을 노목희에게 방류합니다.
문정수에게 노목희는 대밭이기도 하고, 해망의 바다이기도 합니다.

노목희는 미대를 졸업한 교사였고 출판사 직원입니다.
대나무밭으로서의 일상도 좋아하는 노목희는 문정수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문정수가 그녀의 대밭에서 위안을 얻는 것처럼, 그녀도 문정수의 주절거림에서 위안을 얻습니다. 그녀도 변화하는 세상의 빛과 색을 그림으로 담아내지 못하는 주저함이 있어서인가 봅니다. 만물의 변화를 단정 짓지 못하는 그녀의 주저함은 어쩌면 넘치는 사연을 다 품지 못해 괴로워하는 문정수의 그 어떤 면모와 닮아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장철수
그는 불만과 개혁, 운동이라는 색으로 살아가는 사람인데 색을 잃고 맙니다.
어쩌면 색을 잃은 것이 아니라 신문에서 색을 빼버린 사람들 이야기처럼 색이 빠져 보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세 사람 외에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오금자, 그녀의 아들, 소방관 박옥출, 제3자와 그의 어머니, '남'이나 '오'처럼 성만 나오는 사람, 존속살인범, 익명의 익사자, 방미호와 방천석, 후에, 미군 공보관, 횟집마을 사람들......
관계의 밀접함에 따라 사연과 사람은 색이 있을 겁니다.
사람에 따라, 관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변하는 색일 테고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명멸하는 색일 테지요.
노목희가 창야의 저수지에서 포착하지 못해 그리지 못하는 그런 빛과 색일 테고요.
문정수가 가슴에 품기에 벅차서 방류해야만 하는 사연과 사람일겁니다.

바람에 날리며 해망의 간척지를 덮는 풀씨처럼 살아도.
다른 사람들이 흑백으로 보는 삶을 살아도.
한 줄짜리 기사거리도 못되는 삶을 살아도.
바다를 그리며 머리가 깨지도록 수조를 들이받는 바다사자처럼 지향점을 갖고 살고 싶네요.
혐오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사랑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색깔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 색 자주 변하고, 금세 사라질지라도 말이죠.

2. 맑게 소외된 자리

책을 읽고 난 후 감상은 "허무"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지만 허탈합니다.
그 많은 사연들은 숫자로만 기록되는 익명의 사망자들처럼 덤덤하고요, 명멸하는 사람들의 삶은 기사처럼 감흥이 없습니다. 문정수는 데면데면하고, 장철수는 색을 빼버렸습니다. 그나마 노목희가 유학 가는 장면을 희망적이라고 봐야 하나요?

작가의 말에서 김훈 작가는 이렇게 말하네요.

[ 나는 나와 이 세계 사이에 얽힌 모든 관계를 혐오한다.
나는 그 관계의 윤리성과 필연성을 불신한다. 나는 맑게 소외된 자리로 가서,
거기서 새로 태어나든지 망하든지 해야 한다. 시급한 당면 문제다. (p. 325) ]


작가의 심중에 들어가 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말입니다.
'맑게 소외된 자리'가 뜻하는 바도 알기 힘들죠.
그러나 작가가 <공무도하>같이 허무로 가득한 책을 연이어 써 낸다면 10년이 지나지 않아 확실히 '소외된 자리'를 체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책의 감상을 '허무'로 받아들인 저의 개인적 잡생각일 뿐입니다.

해망 바다의 풀씨에게 허무는 없습니다.
수조 안에 갇힌 바다사자에게도 없습니다.
오금자, 박옥출, 등 많은 사람들에게 허무는 사치일겁니다.
실망이나 좌절 같은 허무와 유사한 감정은 있겠지만 허무보다 앞서는 것은 배고픔 같은 생존에의 욕구일겁니다.
오금자씨처럼, 그 아이처럼, 박옥출씨처럼일지라도, <남한산성>에서 말 먼지에 피바람이 몰아쳐도 그저 살고 죽는 사람들처럼요. 일단은 살고 봐야죠.

생각해보면 저 같은 단순한 놈의 생존을 위해서 작가는 부러 허무를 내뱉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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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명선언문(The Path) - 로리 베스 존스

비전, 처세, 희망, 긍정을 말하는 책들을 비웃습니다.
읽어봤댔자 거기서 거기인 말들로 가득합니다. 좋은 말들로 가득하고요, 다시 말하면 뻔 한 말들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그런 책들을 좋게 보지 않습니다.

이 책은 과제이기에 읽은 책 입니다.
그렇게 차갑게 비웃으면서도 기대를 갖는 저를 봤네요.
꺼져가는 불씨에서 피는 연기만큼 희미한 기대를 갖는 저의 이중성에 당혹스럼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희미한 기대에 다시 희망을 걸면서 읽어봅니다.

첫 질문은 심심풀이 심리테스트처럼 가볍습니다.


1. 땅, 물, 바람, 그리고 불의 네 가지 요소에 대해 생각해 보라.
당신은 어떤 것과 가장 닮았는가?

2. 그 요소의 특징을 12가지 이상 나열해 보아라.

3. 이제 그 요소가 무엇을 하는지, 그것에 적용되는 12가지 이상의 행동이나 동사를 나열해 보라.

4. 당신의 이름을 채워넣어라.

(예) 나, ________는 불이다. (p. 52)



이런 재미있는 질문들로 시작해서 참 많은 질문에 답변해가면서 읽어야 합니다.
한 동안 인터넷에서 유행했던 가벼운 믿거나말거나식의 심리테스트를 받는 셈치고 한 번 읽기를 도전해 보시겠어요? 저는 지금 절반 정도 도전과제를 마친 상태랍니다.
절반을 읽은 저의 결과는 좀 이상합니다.


<사명선언문>

나의 사명은
상담소와 함께
가족을 상담하고, 관계하고, 감동시킨다.



좀 당혹스러운 결과입니다.
최근에 나누었던 대화와 최근에 읽은 책의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가시밭길 아닌가요.

비전선언문은 더 황당합니다. 짧게 써 보자면,


박경리 선생님과 같은 작가가 되자.


머리 아프게 6시간여를 들여 읽고 썼는데 이렇게 사명과 비전이 들어맞질 않으니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습니다.그리고 낙담할 만한 일들의 연타를 맞고나니 더더욱 그랬습니다.
며칠 후 다시 펴보니 좋은 글이 눈에 들어옵니다.
제 상황과 딱 들어맞는 말입니다. "창조적 긴장지대" 라고 들어보셨나요?
그 부분을 인용해 보여드릴게요.


[ 로버트 프릿츠는 이 과정을 '구조적 긴장의 유지'라고 칭하였다.
그는 우리의 마음에는 하나의 바람, 즉 한 가지의 이미지만을 보려는 바람이 있다고 말한다. 앞에 얘기한 사실을 여기에 대입해보면, 우리는 현재와 미래를 통합하려는 과정에 돌입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좀 더 자주 비치는 것에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입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므로 '현재'에만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은 '현재'를 더 많이 창조해 낼 것이고, '미래'에 초점을 주로 맞추는 사람은 '미래'를 창조하기 시작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과정에서 소요되는 긴장을 견디지 못한다.
만일 두 개의 서로 다른 이미지를 동시에 볼 때 생기는 스트레스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미래의 비전을 포기해 버리게 될 것이며, 다시 현상유지에 고착될 것이다.

<중략>

사명선언문과 비전을 가진 후에 당신은 '창조적 긴장지대'에 들어서게 될 것이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거기에는 긴장과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사명과 비전을 갖고 일할 때, 당신은 이제 더 이상 다른 사람의 비전에 따라 살면서 무작위적이고 의미 없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며, 창조적 긴장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p. 119) ]


비전과 현실의 괴리가 클 때 비전은 내동댕이쳐집니다.
비전을 잘 모를 때 더 그렇고요, 현실이 바닥을 치고 있다고 생각할 때 비전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허황됨으로 치부합니다. 이런 생각으로 사는 저에게 딱 시의적절한
글이라 인용해 봤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참! 다시 살펴보니 사명선언문이나 비전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면 다시 해보라는군요.
잘못된 사명선언문이 될지라도 시도조차 않는 것보다는 지침이 될만하니 시도해보고, 어울린다 싶으면 유의어를 찾아가면서 확장도 해보라는군요.

저는 머리가 지끈거려 일단은 덮어두었습니다.
다시 펼쳐볼지, 비전을 찾아볼지, 장담하기는 어렵습니다.
당장은 더 하기 싫은 일을 피하기 위해, 덜 하기 싫은 일을 찾아나서야 하는 처지입니다.
비전은 너무나 희미하고, 더 하기 싫은 일은 비전보다 명확하고 가깝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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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제발 잡히지 마 - 이란주

"내 코가 석자인데........."

대화가 어려운 요즘입니다.
경기가 좋지 않고 사는 것이 녹록치 않은 것이 이유입니다.
만나서 하는 얘기들은 스포츠, 영화, 책, 등 남들의 얘기로 겉돌고, 서로의 삶에 대해서는 묻기도 불편하고 듣기도 불편합니다. 간혹 얘기를 시도하다가도 위의 말로 급히 마무리 합니다.

이 책 <아빠, 제발 잡히지 마>를 읽으면서 느꼈던 감동이나 호기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읽고 난 다음엔 할 말이 없네요. 예전에 김용출씨가 쓴 <독일 아리랑>이라는 책을 먹먹한 가슴으로 읽어놓고 리뷰를 쓰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한국에서 일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고달픈 삶과 투쟁, 그리고 불과 한 세대 전에 파독 광부들의 비슷한 삶에서 슬픔이나 연민을 느끼고 거기서 얻은 감동으로 다짐도 해 보지만 저는 여전히 할 말을 잃었습니다.

왜냐면
저도 코가 석자거든요.
다른 이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도,
문제가 있는 제도의 개선책을 공부할 마음도,
격려와 응원을 보낼 금전의 여유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여유 없는 마음은 돌이 되어 가라앉네요 무겁게.


"젠장!" 이라고 소리치고 다시 웃어봅니다.
내 코가 석자이더라도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절박함과 죽음을 읽어도
그들의 삶과 이 땅의 아비들의 삶이 오버랩 되어도
떨어지고, 거절당하고, 무시당하는 일상의 연속일지라도
계속 크게 웃고 노래하면서 살아야죠.
세상에서 제일 즐겁게

그들을 기억합니다. 연대를 잊지 않겠습니다.
저도 비전을 계속해서 찾아보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 <미션> 중에서 - 이렇게라도 웃어야죠~~!!>




마지막은 지금 이 땅의 아버지들의 삶과 비슷해 보이는 이주노동자들의 아픔에 대한 글을
인용함으로 마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리뷰는 <The Path : 기적의 사명선언문> 입니다.

[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처음에는 가족을 위해 돈을 벌러 떠나지만, 이주노동 기간이
길어지면서 결국 가족의 사랑을 잃고 심지어 버림받는 일까지 생긴다.
부부 관계도 소원해지고 아이들은 성장기에 어머니나 아버지가 곁에 없다는 것이 큰 상처로 남아 부모에게 미움을 드러내기도 한다. 아저씨도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곁에 있지를 못했으니, 아이들은 아버지를 돈만 벌어다 주는 존재로 알기 쉬울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가 잔소리하고 꾸중을 하면 관계는 더욱 멀어지기 마련이다. 잘살건 못살건 가족은 함께 지내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은가. 부득이 떨어져 지내야 한다면 기간을 최소한으로 단축해야 한다. (p. 141) ]


P.S  저자인 이란주 씨가 대표로 있는 단체의 블로그 주소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happylog.naver.com/asiansori.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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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초상 - 이문열

이 책은 세 개의 목차를 안고 있습니다.
고교시절 즈음에 해당되는 어린 날의 방황과 외로움을 다룬 <하구河口> 대학시절의  방황과 추억담들을 다룬 <우리 기쁜 젊은 날> 마지막으로 외로움과 허무의 정체를 알아보고자 떠난 여행을 다룬 <그해 겨울>입니다.

1. 하구

고교 중퇴로 더 일그러진 자신을 보면서 느끼는 초조함과 비애의 느낌으로 책은 시작해요.
 

[ 나는 그 편지에서 우선 목적 없는 내 떠돌이 생활의 쓰라림과 서글픔을 은근히 과장하고, 속절없이 늘어만 가는 나이에 대한 초조와 불안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내 믿음과는 달리 정말로 그때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p. 10) ]



그리고 형에게로 돌아가 검정고시와 대학진학이라는 목표를 정해놓은 후의 삶도
외로움과 방황을 달래주기는 힘들었나 봅니다.


[ 추억하기조차 가슴이 서늘한 강진의 풍경 중의 하나는 그런 불면의 밤 내가 늦도록 배회하던 갯가의 둑길이다. 으스름한 달빛과 안개 자욱한 포구, 끝없이 출렁이는 갈대의 바다와 그 위를 스쳐가는 바람소리, 이름 모를 새들의 구성진 울음소리......나는 그러한 것들 사이를 마치 몽유병자처럼 늦도록 거닐었다. 그리고 그때 나를 지배하는 것은 어두운 방안에서의 번민과 고뇌 대신 울고 싶도록 철저한 외로움이었다. (p. 23) ]


덜 익은 첫사랑 이야기와 이념대결의 연좌제 같은 얘기들이 곁가지를 치고 있기는 하지만 주된 내용은 외로움, 허무, 갈구, 방황 이라고 생각합니다. 갖고 있어야할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불안한 맘으로 찾기는 하는데, 무얼 잃은 지도 모르는 난감한 상황입니다. 이 불안과 결핍은 대학에 가서는 어찌될까요?

2. 우리 기쁜 젊은 날

다행히 '하가'와 '김형'이라는 맘 맞는 친구들을 만나게 됩니다.
'모든 것을 아는 바보' 가 되어서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 거죠. 그들과 독서 술판 토론을 하면서 나름의 재미있는 생활을 합니다.그리고 김형의 추천으로 문학회에서 나름의 인정을 받게 되죠.


[ 시처럼 힘들이지 않아도 나는 곧잘 합평회의 갈채를 받았고, 때로는 동인지나 교지에까지 실려 처음으로 활자화된 내 글을 보는 감격도 맛보았다. 그때껏 과정으로서의 삶만 살아온 내게는 처음 경험하는 존재의 외부적 승인이었으며, 초라하나마 성취의 희열이었다. (p. 86) ]


이런 행복도 꼬아보는 시선과 뒤틀린 성격으로 스스로 내치게 됩니다.
결국 남들에게 인정받는 삶을 살고자 하면서 그것뿐이면 너무 없어 보일 것만 같은 알기 힘든 고고함이 충돌하는 셈이지 싶습니다. 알기 힘든 그 고고함을 채워주는 것이 '앵벌이 소년과의 만남'정도가 될까요?
그리고 그 연장선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생각되네요.

3. 그해 겨울

강원도로 무작정 떠나서 '광부'가 되길 했으나 무너지는 갱도를 보고는 그만 두고, 작은 고깃배의 선원이 되고자 했으나 거절당합니다. 허락받았어도 무서웠을 겁니다. 그렇게 흘러 흘러 작은 요정이자 여관인 곳에서 허드렛일을 해봅니다.
 
고교시절부터 막연히 찾고자 했던 것.
마음 속 비어있는 그 무언가를 그렇게 찾고자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면서 타협하는 걸로 보입니다.


[ 절망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치열한 정열이었으며 구원이었다. (p. 213) ]



책의 마지막장이 찢겨있어 결말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마지막 한 장이 아무리 극적이라도 <그해 겨울>의 첫 부분을 보면 주인공 영우는 그냥 그렇게 타협하고 여전히 마음속은 비어있을 거라는 제 생각이 맞을 듯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 빈 부분을 복잡한 일상과 감정, 추억들로 메우고 덮으며 살아가겠죠.

첫 부분이 이렇거든요.


[ 이제 그 겨울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이미 한 가정을 거느렸고, 매일 매일 점잖은 복장과 성실한 표정으로 나가야 할 직장도 있다. 또 나이는 어느새 서른을 훌쩍 넘어 감정은 많은 여과를 거쳐야 하며, 과장과 곡필로 이루어진 미문(美文)의 부끄러움도 알게 되었다. (p. 170) ]


열정, 이상, 꿈, 희망을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그냥 그렇게 사는 삶을 하찮게 여길 수 없습니다. 외려 존경하는 쪽입니다. 특히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키우는 삶은 더욱더 존경하지요. 그리고 정답을 찾지 못해도 젊은 날의 치열한 방황과 고민도 역시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결말에 저까지 허무한 이유는 뭘까요.
아직 그의 고교시절만큼이나 이룬 것이 없는 것도 이유겠지요.
다른 사람의 눈병을 옮아 그 사람의 눈병이 낫는다는 속설처럼. 영우를 정상인으로 낫게 하고자 그의 허무를 떠안은 것만 같아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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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 - 이문열

1. 유다의 죄는 무엇입니까?

다니던 교회의 어느 동생이 목회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이 책에서 '아하스 페르츠'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도 진실로 카인의 죄를 믿으십니까?


두 질문이 유사합니다.
모든 것이 전지전능하신 신의 계획과 예정대로라면 유다와 카인은 신의 도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을 뿐 죄가 될 수 없는 것이죠. 그리고 '자유의지'로 선을 지키고 악을 행하지 말았어야 한다면 '자유의지'로 인해서 신의 예정은 변경될 수도 있는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의문은 '그의 부정(否定)은 확신하고 긍정하기 위함(p. 75)' 입니다.
그런데 전 어지러운 논리는 질색함으로 답을 아직도 알지 못합니다. 답을 알지 못함으로 아직도 어지럽기도 합니다.

2.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런 의문에서 시작한 '아하스 페르츠'는 종교적 교의를 이해하고자 여행을 떠납니다.
이집트의 이시스와 호루스에게서 인간으로 태어나 고통 받으며 무력하게 죽어가는 신의 모습을. 가나안지방에서 바알신의 농경신적 요소를 흡입했음을, 바빌론에서 천지창조와 아다파왕의 생명의 식물, 지아스투라의 홍수를 봅니다. 아래에 인용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 원래 야훼는 엘 사따이산에 은거하던 목양자의 신에 불과했다.
거기에 모세의 광기가 접한 호렙산의 영이 더해져  야훼는 곧 가나안의 쟁취를 위한 무자비한 군신으로 변질되었다. 그 뒤 엘리야와 호세아는 그에게 농경신의 권능을 부여했고, 아모스와 이사야를 통해 민족의 신에서 우주의 절대유일자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바빌론에서 페르샤인들의 사탄과 종말론을 도입함으로써 우리의 야훼는 완성되었다. 결국 야훼가 우리를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야훼를 만들었을 뿐이다. (p. 169) ]


10년에 걸친 종교공부를 위한 여행과 철학의 공부에도 불구하고 공허함을 이기지 못한 이유로 또는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이유로 '아하스 페르츠'는 조국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가 믿는 신을 만나게 됩니다.

3. 요즘 드는 의문

그가 믿는 신은 예수를 땅에 보낸 신과는 다르기에 그는 예수와 일곱 차례 논쟁을 합니다.
그 중에서 제가 요즘 가장 의문이었던 물음이 있어서 인용해 봅니다.


[ 그 다음에 당신은 우리를 향해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이 되라 하셨소, 보복하지 말라 하셨으며,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소. 오른 뺨을 치거든 왼 뺨마저 내놓고 속옷을 달라거든 겉옷까지 주며, 오 리를 가자거든 십 리를 가 주라 하셨소. 진실로 묻거니와, 도대체 당신은 그 모든 가르침의 실천이 우리 인간에게 가능하다고 믿으시오? 인간의 창조자 오직 당신 아버지의 선으로만 이루어진 것으로 믿으시오? 그러나 자신 있게 단언하지만 여인의 몸을 빌어 태어난 자 중 그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당신뿐일 것이오. 극소수의 사람들이 당신을 따라 출발할 것이지만 결코 아무도 도달하지는 못할 것이오.
그리고 그 나머지 -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그 교훈은 오직 감당할 수 없는 영혼의 짐, 영원히 헤어날 길 없는 죄책감과 절망의 원인이 될 따름이오. 비록 당신으로 하여 율법은 완성될 것이지만 그것은 인간과는 별 상관이 없는 독선의 완성일 따름이오. (p. 202) ]


계명들이 지켜져서 지상낙원이 세워지는 것에는 반대할 사람이 없겠지요.
그러나 이런 계명들은 '삼청교육대'가 범죄를 일소할 것이라고 믿는 것 만큼이나 요원해 보입니다.

4. 기독교의 변신론

그리고 해설에 보니 기독교의 변신론(辯神論-theodicy)을 얘기하네요.


[ 고통, 죄악, 죽음 등과 같은 현상들은 언제나 기존 질서의 재편성을 요구하는 위협적인 힘이 된다. 이러한 위협들을 종교적 정당화의 견지에서 해소하여 기존 질서를 재확립하기 위한 논리를 변신론이라고 한다.

변신론의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인간들의 매저키즘적 속성이다. 인간은 자신의 불안과 욕구를 타인에게 의탁하고자 하는 자기 부정의 경향이 있다. 이러한 자기 부정적인 의탁을 가장 확실하게 받아 주는 타자가 바로 신이다.
신은 인간에 대해서 <전체적인 타자他者-Totaliter aliter)>로 가정된다. 인간은 전체적 타자에게 자기 부정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의탁을 함으로서 오히려 심리적 안정과 희열을 얻는다. <나는 하찮은 존재이고 신은 가장 소중한 존재이다. 신 안에 나의 궁극적인 지복이 있다> 라는 표현 속에서 매저키즘적 태도의 본질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매저키즘적 의탁은 신의 경험 불가능성에 의해 더욱 고양된다. 신은 인간이 경험할 수 없는 것일 때 더욱 완벽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신에 대한 묵시적인 비난은 오히려 그 인간에 대한 명시적 정죄로 전도되고, 신의 정의에 대한 회의는 오히려 그 인간의 죄에 대한 물음으로 전도된다. 기독교에서 강하게 내세우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 인간으로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다 헤아리지 못함, 인간은 원죄를 가지고 있음 등등은 모두 인간의 매저키즘적 속성을 정교하게 이용하는 변신론이라고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통도 인간의 고통을 합리화시키는 중요한 변신론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고통을 당하셨고, 그 고통은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는 곧 인간들의 고통이 당연한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 기독교에서 말하는 낙원회복의 약속, 즉 메시아주의나 천년왕국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인간의 죄악과 고통을 구원해 주시지 않는가라는 경험적 반증에 대하여 기독교는 인간이 경험할 수 없는 미래에 그 낙원을 설정함으로써 인간의 고통에 찬 불만을 눌러버린다. 이러한 변신론을 통하여 종교는 현실적 위협으로부터 자체의 존립을 보호한다. 그런데 이러한 변신론은 중요한 사회적 기능도 담당한다.
즉 사회에 편재해 있는 온갖 특권과 불평등과 고통을 합리화시켜 주는 것이다. 종교적 교리는 부당한 사회 질서를 정당한 것으로 여기게끔 강요하는 것이다. (p. 277) ]


이 이론의 완성도는 저에게는 문제될 것이 없네요.
왜냐하면 제가 꼭 이렇습니다.
불확실성과 불안함을 의지하고자 하고, 은총보다는 징계를 두려워하는 수준의 믿음이거든요. 극복해야겠지요.

믿기 위해 의심한다고 하면 대부분 교인들은 고개를 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열 두 사도도 직업별로 믿는 방식이 제각기였다고 들은 바가 있습니다.
위에 나열한 의문들과 이론들을 이론으로서 또는 믿음으로 극복하고 믿는 날이 오기를 기도합니다.

덧붙임 1 : 이문열 작가는 누구나 갖는 의문들(스쳐 지나갈 뿐이더라도)을 참으로 기막히게 포착하고 풀어나가는  능력이 있는 듯 합니다.

덧붙임 2 : 해설자는 "<사람의 아들>은 신에 대한 부정이라기보다는 신을 부정해야 할 만큼 악화된 우리 시대의 삶에 대한 부정인 것이다." 라고는 하지만 책 속의 비중을 생각해 볼 때는 그 이상의 비중이 있는 듯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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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로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이문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놀랐습니다.
졸업 후 지난 세월만큼의 기억들로 덮어 둔 학창시절의 정서를 어쩌면 그리고 정확히 짚어서 끄집어내는지요. 영화가 워낙 좋아서 책을 읽어봤습니다.


[ 벌써 30년이 다 돼 가지만, 그해 봄에서 가을까지의 외롭고 힘들었던 싸움을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때처럼 막막하고 암담해진다. 어쩌면 그런 싸움이야말로 우리 살이가 흔히 빠지게 되는 어떤 상태이고, 그래서 실은 아직도 내가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받게 되는 느낌인지도 모르겠다. (p.11) ]


병태가 떠올리는 암담한 추억의 느낌으로 이렇게 소설은 시작합니다.

1. 불편한 질서

'자유당 정권이 마지막 기승을 부리고 있던 그 해 3월' 서울에서 전학 온 깍쟁이 한병태는 시골학교가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크기와 선생님들부터 시작해서 주먹으로 또는 최선생이 위임한 전권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급장 엄석대가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엄석대에게 당하면서도 반항 없이 복종하는 아이들의 태도를 알 수 없었습니다.

이런 그들의 생활은 나름의 '불편한 질서' 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물건을 빼앗기거나 먹을 것을 바쳐야 함에도 반항 없이 무조건 복종합니다. 부당함이나 복종의 굴욕은 무서움으로 봉쇄되었고 그렇게 습관이 됩니다. 그리고 그 습관은 나름의 질서가 됩니다. 그 질서는 엄석대를 정점으로 주먹과 공납으로 정해진 서열이 있어 다툼이 없습니다. 청소나 실습에서 엄석대의 무서움으로 늘 1등 반이 됩니다. 모든 것을 엄석대에게 맡기고 그에게만 복종하면 되는 나름 편해 보이는 질서입니다.
마침내 아이들은 그 질서를 편안해하고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 "급장이 부르면 다야?"  "급장이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서 대령해야 하느냐구?"
그래도 나는 서울내기다운 강단으로 마지막 저항을 해 보았다.
그때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 말이 떨어지자마자 구경하고 있던 아이들이 갑자기 큰 소리로 웃어댔다. 내가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했다는 듯 (p. 29)]



한병태는 이 불편한 질서에 뻗대며 반항합니다.
'자유'니 '합리'이니 하는 추상적 가치를 이해하고 지키고자 함이라기보다는 자신에게 곧 닥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함이 첫째 이유이고 둘째 이유는 자존심 때문이기도 합니다.

2. 질서에 합류

엄석대반의 완벽한 질서에 버둥거리며 반항하지만, 병태의 힘은 약하기만 하고 조력자도
찾을 수 없어 외롭기만 합니다. 결국 오기와 증오로 버티던 병태도 외로움을 이기지 못합니다.

질서에 합류한 병태는 학교성적과 주먹의 서열이 다시 올라가 제자리를 찾습니다.
외로움에서 벗어나 동무들과도 어울리게 됐고요. 적극적으로 엄석대를 찬양하거나 지지하는 활동을 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전학 왔을 때만 해도 이상하게 생각했던 아이들과 똑같아 졌습니다.

3. 질서의 붕괴

6학년이 되어 새로운 젊은 김선생은 결국 답안지 바꿔치기를 비롯한 엄석대의 비리를 알게 되고, 엄석대의 질서는 끝이 납니다. 회의의 원활한 진행이 이뤄지지 않을 때와 협동 작업에서 내빼는 아이들을 볼 때 석대시대의 질서가 주는 편의와 효용성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작은 석대의 질서는 무너졌지만, 세상의 질서에 무력한 개인의 모습은 그대로입니다.


[ 나는 급했다. 그때 이미 내 관심은 그런 성공의 마뜩치 못한 과정이나 그걸 가능하게 한 사회구조가 아니라 그들이 누리고 있는 그 과일 쪽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 나도 어서 빨리 그들의 풍성한 식탁 모퉁이에 끼어들고 싶었다. (p. 201) ]


4. '조지 오웰'보다는 '위화'에 가까운

그저 아이들의 얘기일 뿐일 수도, 다른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조지오웰이 정치적 의사표현의 도구로 우화를 사용했던 <동물농장>처럼 볼 수도 있겠죠.
특히 6학년 담임인 김선생이 아이들을 혼내는 장면에서는 더 그렇게 보이죠. 아래처럼요.
 

[ 너희들은 당연한 너희 몫을 빼앗기고도 분한 줄 몰랐고, 불의한 힘 앞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그것도 한 학급의 우등생인 녀석들이...... 만약 너희들이 계속해 그런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앞으로 맛보게 될 아픔은 오늘 내게 맞은 것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그런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 만들 세상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모두 교단 위에 손들고 꿇어앉아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반성하도록 (p. 160) ]



그러나 이 책이 독재정권이나 사회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네요.
아이들의 세계에도 어른들의 세계에도 있는 질서 앞에서 무력한 개인의 모습, 그리고
질서의 당부를 따지기보다는 '풍성한 식탁 모퉁이'에 앉고 싶어 하는 개인의 모습을 솔직하게 그려냈다고 생각합니다. 난 아니라고 자신하기도 힘들고 그래서 비난하기도 쉽지 않은
그런 모습을 말이죠.

P.S 인용한 페이지는 민음사 출판의 <이문열 포토로망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페이지수 입니다. 다림출판의 페이지와는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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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로처

슬럼독 밀리어네어(Q&A) - 비카스 스와루프


시크교 대표가 불참했기에 그나마 줄어든 이름 '람 모하마드 토마스' 가 등장합니다.
이런 독특한 이름을 갖게 된 그 날의 이야기부터 웃음이 터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을 즈음에 웃음은 가라앉고 이름만큼 너울거리는 일상을 살았던 사람만
남습니다.

그는 "나 같이만 살아라." 하며 책을 낼만 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그의 독백대로 '바보 같은 고야 녀석' 일 뿐이고, '학교도 못 다닌 웨이터' 일 뿐 입니다. 그는 화장실에서 냄새보다는 엉덩이 걱정을 해아 하는 지역에 주로 살고요, 배가 고프면 맥도널드의 쓰레기통을 뒤질 수 있는 능력도 있고, 연고 없는 결혼식장에서 음식을 먹다가 양쪽의 가족들에게 몰매를 맞는 친구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엉터리 가이드 생활로 돈벌이하는 능글맞음도 있어요. 그리고 나라에서 제일 힘 셀 것만 같은 경찰을 무서워합니다.

이런 그도 가진 것이 있는데요.
제가 가장 부러워하는 그것은 그의 굳은 '심지' 입니다.
그 사람의 '바보 같은 고아 녀석에 불과했으니까.' 라는 독백은 자책하는 듯 하지만
전혀 움츠러들지 않습니다. 테일러 대령이 습관적으로 내뱉는 "이 지겨운 인도 놈들!"
이란 말을 들어도 작아지지 않습니다. 소년원에서 본 영화의 환상에 스스로 취하지도 않고,
그렇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자신보다 못한 처지의 사람들을 돕는 여유마저 있지요.
그는 '살림'을 친동생처럼 보살피고, '구디야'를 불쌍히 여겨 돕습니다.
영화배우 '닐리마'를 도우려 애썼으며. '니타'를 사랑하고, '샹카르'의 죽음을 진정 슬퍼합니다.

'연꽃' 생각이 나지 않으세요?
저는 연꽃 생각이 나네요.
연꽃의 미덕은 여럿 들 수 있겠지요.
아름다움과 여러 가지의 쓰임새, 그리고 진창에서 꽃을 피운다는 점, 등이요.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본 연꽃의 미덕은요.
진창임에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일컫는 '진창'을 인식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진창을 '용이 벗어나야만 하는 개천'으로 여기는 것도 아니고요, '더럽지만 참아준다.' 고 생각하며 고행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좋은 경험으로 체험해보자.'는 것도 물론 아니죠. 그냥 살아가는 거겠죠.
아래에 '진창'에 대한 '연꽃'의 생각이라 여겨지는 부분은 인용함으로 글을 마칩니다.


[ 우리는 짐승처럼 살다가 벌레처럼 죽어갔다.
전국에서 몰려든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 아시아에서 가장 큰 빈민가에서 한 줌의 하늘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끊임 없이 다투었다. 한 뼘의 땅, 한 양동이의 물을 싸움이 끊이질 않았다. 그런 싸움이 때로는 살인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비하르, 우타르프라데시, 타밀나두, 구자라트의 낙후지역 사람들이 다라비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부자가 되려는 꿈을 안고, 중산층이 되겠다는 꿈을 품고 황금의 도시 뭄바이로 찾아왔다. 그러나 그 황금은 납으로 변한지 오래였다. 가슴이 멍들고 병들대로 병든 낙오자만 남아있을 따름이다. 나처럼! (p. 1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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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