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프랭키님의 블로그에 다녀왔어요.

역시나 라오스의 멋진사진과 시와 같은 글을 올려놓으셨네요.

"사진 참 예쁘다!" 하고 헤벌쭉 구경하고 있는데.

시와 같은 프랭키님의 '색'에 관한 글을 보니, 제가 아는 색이 거의 없더군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색은 뭐라고 해야 하나 싶었어요.

재미있겠다 싶어서 잠깐 생각해봤어요.

결과는 <무채색 나라의 로처> 또는 <색 없는 자들의 도시> 에 가깝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아무 생각없이 살아왔나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나름 생각해본 색들을 적어 봅니다.

1. 빨래가 귀찮아 산 흰 먼지가 유독 눈에 띄는 목티의 검은색

2. 두 켤레 천원하는 무좀에 직빵인 양말의 물빠진 남색

3. 신문 돌리는 아이의 찢어진 우의의 노란색

4. 뽀글뽀글 파마머리로 흥정하면서 시장을 누비시는 아줌마 바구니의 공장태생 파란색

5.  좋아하는 가로등의 오렌지색

6. 화목함이 배어나오는듯, 남의 집 거실의 간유리에 비치는 거실의 불빛

7. 우리동네 집집마다 옥상에 칠해져 있는 우레탄의 녹색

8. 버스터미널의 좋지 않은 공기와 같은 검은 기름 얼룩진 콘크리트의 회색

9. 오래된 보도블록에서 살려고 애쓰는 이끼의 녹색.

10. 스님들 승복의 색. 옅은 쪽빛 같기도하고 회색 같기도 한.


무언가 느낀 바가 있었고, 재미있는 도전거리여서 시작했는데, 요상합니다.

프랭키님에게 왠지 모를 미안함이 드는 건 요상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색'을 어떻게 말하실 건지 생각해 보세요.

전 짧은 시간이나마 꽤나 재미가 있었답니다.

Posted by 로처

두 여자 이야기 입니다.

첫 번째 여자 마리암

'마리암'이라는 여자는 다섯 살 때 '하라미(후레자식)' 의 뜻을 알게 됩니다.
'나나'라는 이름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절망스러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말해줍니다.
어쩌면 현실보다 더 가혹할 수도 있는 말들을 내뱉습니다. 아래 같은 말들을.


< "내 딸아, 이제 이걸 알아야 한다. 잘 기억해둬라. 북쪽을 가리키는 나침반 바늘처럼,
남자는 언제나 여자를 향해 손가락질을 한단다. 언제나 말이다. 그걸 명심해라, 마리암." (p. 15) >

<나나는 눈송이 하나하나가 이 세상 어딘가에서 고통 받고 있는 여자의 한숨이라고 했었다.
그 모든 한숨이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어 작은 눈송이로 나뉘어 아래에 있는 사람들 위로 소리 없이 내리는 거라고 했었다. (p. 125) >


자신의 인생을 비관하는 나나와 함께 살면서도 '파이줄라 선생'과 일주일에 한 번 찾아오는 아버지 '잘릴 한'이 있어서 가슴 부푼 소녀시절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나의 저주는 현실이 됩니다.
'잘릴 한'의 사랑은 헌금으로 얻는 면죄부처럼 한정적인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극장에서 그의 가족들과 피노키오를 보고 싶다는 마리암의 소망이 거절되는 순간
나나의 저주는 현실이 되고, 오두막의 공주 같은 소녀시절은 끝이 납니다. 그리고 그 끝의 시작에는 폭력적인 남편 '라시드'가 함께 합니다.

마리암은 임신이라는 축복과 행복 속에서도 이런 기도를 합니다.

이 행운이 자신에게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해달라고 신께 빌었다. (p. 123)


두 번째 여자 라일라

같은 사회에 살면서도 라일라는 마리암과는 좀 다른 소녀시절을 보냅니다.
그녀에게도 전쟁에 참여한 두 아들이 마음을 차지한 어머니가 있지만요.
그녀의 아버지 '바비'는 이런 말을 해줍니다.


너는 아주 영리한 아이야. 정말로 그렇지.
라일라, 너는 원한다면 뭐든지 될 수 있어. 나는 알아. 그리고 또 한 가지, 전쟁이 끝나면
아프가니스탄은 남자들만큼이나 너를 필요로 할 거라는 사실도 알지. 어쩌면 더 필요로 할지도 모르지.
여자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면 사회는 성공할 수가 없는 거다. 그럴 수가 없지." (p. 155)


마리암과는 다른 가정 속에서 기대에 부푼 소녀시절을 보냈지만 결국 라시드의 아내가 됩니다.
개인의 차이, 가정의 차이, 교육의 차이를 넘어선 '사회제도의 억압적 틀'을 보여주려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마리암과 라일라는 그렇게 소녀시절의 꿈을 접고 라시드의 아내로 살아갑니다.


마리암과 라일라의 화해

마리암과 라일라의 화해는 한 남자(라시드)의 비극으로 끝이 납니다.
그가 행한 짓거리를 보면 "죽어도 싸다." 할 만합니다.
사람이하의 짓거리를 하는 것에 분노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야만적인 억압의 사슬을 끊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해피엔딩을 그리기 위해 죽어야 하는 라시드는 사람이 아닌 악의 축이었고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그녀들의 일상적이고 평범한 행복을 돋보이게 해주는 장치에 불과했네요.

라시드의 결말과 마리암의 희생으로 주인공 라일라과 타리크는 행복하게 살아간다.
너무나 미국영화 같은 이야기 아닌가 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네요.

그의 아들 '잘마이'를 생각한다면 아마 비극은 대를 잇지 않을까 합니다.

P. S
그나저나 마리암이 너무나 불쌍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생각나는 한국영화가 두 편이 있네요. 하나는 못 본 영화이지만요.

<두 여자 이야기> 와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입니다.

Posted by 로처

그 사람을 알아보는 데에는 많은 방법이 있을 겁니다.
<건투를 빈다>에서 김어준씨는 모든 것이 부족한 여행을 같이 떠나보면 그 사람의 밑바닥까지 알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사람의 성장환경이나 부모를 보면 알 수 있다고도 하고요. 누군가는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도 합니다.

이 책 <연을 쫓는 아이> 에서 '나'(아미르)를 말하기 위해 기억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우선 그 주요 인물들을 간략히 소개하고 '곰 이야기'로 넘어갈게요.

1. 아미르를 이루고 있는 인물들

바바 - 아미르의 아버지

커다란 체격에 사회적 성공과 부까지 거머쥔 사람으로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
자신의 아들에게는 자상한 면이 부족한 전형적인 아버지상이죠.
이마르는 바바를 존경하고 그의 사랑을 독점하고 싶어 하지만, 그와는 너무 다른 자신을 보면서 실망도 하고 그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이유로 전전긍긍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아미르는 자신이 원하는 진로를 선택합니다.


라힘 칸 - 아버지의 친구이자 아미르의 친구

아미르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열패감을 느낄 때에 힘이 되어준 어른친구 입니다.
아미르가 처음 이야기를 썼을 때 목말라 하던 칭찬을 해준 인물이 '라힘 칸'과 '하산' 이죠.
아버지에게 바라기 힘들었던 자상한 격려를 해주는 사람으로,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고민을 털어놓을 뻔 했을 만큼 자상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다시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단다."라는 전화 한 통으로 이마르가 자신의 곰과 대면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하산 - 하인이자 친구인 하자라인

절대 자신을 위한 거짓말을 하지 않는 소년입니다.
글을 몰라도 영리하고 지혜로우며 부지런한 영혼이죠.
그리고 늘 짓는 미소로, 정직으로, 새총으로 곰과 겨루는 인물입니다.
제가 이 책에서 제일 좋아하는 말을 합니다.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할게요."


아세프 - 히틀러를 존경하는 인물. 곰의 화신(?)

타헤리 소라야 - 아미르의 아내

아미르가 힘들 때나 기쁠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소랍 - 하산의 아들


2. 곰 이야기

이 책을 읽으면서 영화 <가을의 전설>의 마지막 부분을 생각했어요.
브래드 피트가 곰과 사투를 벌이는 장면 말이죠.

이 책의 앞부분에 느닷없이 곰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떠도는 이야기에 따르면 아버지는 옛날에 발루치스탄에서 맨 손으로 검은 곰과 겨뤘다고 한다. (P. 24)


'바바'는 다양한 사회활동과 기부를 통해서 곰과 겨룹니다.
'하산'은 그의 정직과 충실 그리고 새총으로 곰과 겨룹니다. 빠질 수 없는 그의 미소까지.
주인공 '아미르'는 곰을 보고 도망친 기억으로 괴로워합니다.
곰을 외면한 대가로 그는 계속 거짓말을 해야 했고,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립니다.
그러다 아래와 같은 결심을 합니다.


다시 라힘 칸의 아파트로 돌아가는 인력거 위에서, 내 문제는 항상 누군가가 내 대신 싸워주었던 것이라는 바바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이제 서른 여덟 살이다. 머리카락이 조금씩 빠지고 있고 최근에는 눈가에 잔주름이 생기고 있다.
이제는 조금 나이가 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나 스스로 싸움을 시작할 수 없을 정도로 나이가 든 것은 아닐 것이다. 바바가 많은 거짓말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내 문제에 대해서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중략>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린 나는 그에게 내 결심을 전했다.
카불로 가겠다고, 아침에 캘드웰 부부에게 전화를 걸겠다고. (P. 339, 340)



아미르가 곰과 겨루는 장면은 이 책의 후반부 이야기 입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자세한 내용은 말씀드릴 수 없네요.
그리고 이 책은 아미르가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하면서 끝이 납니다.

"너를 위해서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해주마."

저는 곰으로부터 달아나려는데 제자리걸음입니다.
다시 '선택', '책임', '감당' 이라는 단어가 눈에 밟힙니다.
왜 이리 망설여지고도 어려운지요.

Posted by 로처

용비불패 20 권 중에서 - 문정후

요즘 길을 걷다보면 문을 닫은 가게들이 보입니다.
비디오 대여점, 만화방 얘기네요.
불 꺼진 점포 안을 들여다보니 끈으로 묶은 책꾸러미들이 보입니다.
'점포정리', '만화방 인수하실 분', 등등이 쓰인 백지 너머로요.

비디오대여점 같은 경우는 동네마다 점포가 몇 개씩 들어서며 성업하던 게 불과 10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영업하는 곳을 찾아보기가 더 힘이 듭니다.
문 닫은 가게들을 보면서 덜컥 겁이 납니다.
변하는 것들이 겁이 나고, 나만 뒤에 남겨진 것 같아 겁이 납니다.

이런 와중에 아직도 권당 300 원하는 만화방을 찾아냈어요.
만화도 천천히 보는 저로서는 횡재죠.
요즘 만화를 본 지 너무 오래 되어서 볼만한 만화를 고르는 것도 일이네요.
그래서 예전에 보았던 용비불패를 다시 봤어요.

그냥 읽다가 20권에서 적어두고 싶은 대사를 봤지요.
아래에 옮겨봅니다.

역모죄인의 후손인 용비와 국가로부터 죄인의 낙인을 받은 그의 부하들은 변방의 이민족들을 척살함으로 '인간'임을 증명하려고 싸웁니다.

변방의 이민족들은 우리도 '인간'임을 알리기 위해 그리고 살기 위해 싸웁니다.

흑색창기병대장 용비는 변방의 민족들과의 큰 싸움을 한 후 내부갈등으로 부하도 모두 잃고, 이민족의 병사들도 거의가 죽음에 이릅니다. 그리고 용비를 살리고 눈을 뜨게 한 이민족의 왕도 죽습니다.

그 후
용비는 세력이 크게 꺾인 - 성인 남자들이 대부분 전사하여 - 그 민족의 삶에 관심을 갖다가 그를 돕는 '노백'에게서 그 민족이 다른 민족의 노예를 자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노백과 얘기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살아간다는 건 중요한 것입니다.

슬퍼하거나 분노하는 것은, 살아만 있다면 나중에라도 할 수 있죠.
이 늙은이의 소견으로 그들의 선택은 현명한 것이라 생각됩니다만......

노예로 전락하면서까지 말인가?

그들이 선택한 건 노예가 아니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조건 하에서의 여인들의 강함이란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노예든 뭐든....... 그들이 그런 선택을 했다는 건, 죽어간 이들의 의지가 그대로 살아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 용비불패 20권 84~86 p 대사 중에서 -


옆자리에서 가족인지 단골인지 모를 사람들이 짜장면을 먹네요.
당구장 만화방에서 먹는 것은 자장면 아니라 짜장면 맞죠.
제가 좋아하는 것도 자장면 아니고 짜장면 맞죠.

헤벌쭉 웃으면서 "저도 한 그릇 시켜주세요." 하고 같이 먹을 것을......

Posted by 로처

1. '졸라'와 '씨바'를 즐기신다면 재미있습니다

책의 내용과 무관하게 추천하기가 망설여지는 이유가 이 책의 말투에 있습니다.
이 책은 '졸라' 와 '씨바'를 섞어서 쓰면서 공대와 하대를 번갈아합니다.
이 두 단어는 그 예일 뿐이죠. 한 구절 인용해 보면 이렇습니다.


[ 당신 말이 옳다. 당신 억울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직장 내 게임 룰은 여전히 남자들이 세팅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 게임의 룰은 간단하다. 너, 내 편이냐 아니냐. 그 피아 구분을 위해, 그 패거리 짓기를 위해, 남자들은 끊임없이 이너 서클을 만든다. 그렇게 우린 한통속이라는 의식을 조직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계보가 만들어 진다. 위로 갈수록 승진은 계보를 탄다.

집안 생계 운운하는 것은 남자들의 옹색한 핑계요,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그 말이 진정이라면 소녀 가장 승진이 가장 고속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p. 194) ]



이런 글들이 저는 그저 재미있습니다. 막말이 솔직이나 담백을 무조건 담보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원해서 좋습니다.
하지만, 익숙지 않으신 분들은 이 책의 말투가 목불인견일지도 모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예전에 마왕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신해철씨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어본 적이 있어요.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이라고요.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은 줄로 알고 있습니다만, 저는 신해철씨의 말투가 거슬려 도저히 못 듣습니다.  
이 책 <건투를 빈다>의 말투에서 좋고 싫음이 많이 갈리지 않을까 싶어요.


2. 인간관계론처럼 스테디셀러가 될까?

형님의 추천으로 읽게 된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재미있게 봤어요.
이 책도 사람 사는 세상의 크고 작은 문제와 그로 인한 고민들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이 책도 오래도록 사랑받을까요?

제가 생각하는 두 책의 비교를 짤막하게 써 볼게요.

<'건투를 빈다'의 좋은 점>

첫째, 말투가 재미있습니다. 위에 말씀드렸듯이 개인차가 클지도 모릅니다.
둘째, 시원시원한 그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문제는 쉬워보입니다.
셋째, 내담자와 상담자 모두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공감하기가 쉽습니다.진로, 직장, 부모, 연인, 사이의 문제들이 남일 같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건투를 빈다'에 없는 점>

인간관계론과 다르게 상담의 추이나 문제의 개선여부는 없어요. 고민에 이은 시원한 답변으로 끝입니다. 이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할 말만 하고 끝나니까요.
그렇다고 생각할 여지가 형편없이 적다는 말은 아닙니다.

3. 저를 찌르는 말들 - 선택과 감당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저를 찔렀던 말은 서문에 있는 구절(스스로에게 해야 될 질문을 남에게 하고 있는가?) 과 '선택' 그리고 '감당' 입니다.
직장, 진로, 부모, 연인, 부부, 친구, 돈, 등 힘들게 하는 문제의 많은 부분에 이 두 단어가 있어요.

선택과 감당

'선택과 감당'이 사용된 많은 구절들 중에서 둘을 인용해 볼게요.


[ 선택은 언제나 선택하지 않은 것을 비용으로 한다. (p. 114) ]

[ 모든 선택에는 반드시 리스크가 따른다. 모든 선택에 따른 위험부담을 제로로 만들어달라고 한다면 그건 삶에 대한 응석이다. 그러니 중요한 건 선택의 이유다. 나머지는 그 이유를 붙들고 감당하는 거다. 스스로 설득될 이유가 있는지 생각해보고, 만약 그런 게 있다면, 그럼 누가 뭐라고 하든  그 결과까지 자신이 감당하는 것, 그게 어른의 선택이다. (p. 158) ]


참 우유부단한 저로서는 뜨끔하더라고요.
뭐 이런 말들 처음 들어본 말도 아니고, 스스로 생각 안 해본 바도 아니지만요.
'선택과 책임'으로 주로 되뇌고 있던 차에 '감당'이란 단어가 들어오네요.

그만 떨고, 감당할 수 있는 선택하러 가야겠어요.
감당할 각오로 선택하러 가야겠어요.
그리고 스스로가 언제 행복한 지, 화나는 지, 슬픈 지, 기쁜 지, 대충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려고요.

Greenbea 님께서 달아주신 <빵굽는 타자기>에 대한 댓글로 마무리 할게요.

항상 눈을 뜨고 있으면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뭐든지 유익할 수 있고, 내가 미처 몰랐던 것을 가르쳐 주리라 생각했다.
Posted by 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