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간 악착같이 모아둔 돈으로 레스토랑을 차렸다. 알지도 못했고, 묻지도 못했고,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다. 모든 걸 내 스스로 깨우쳐야했다. 힘들어 포기하고 싶고 눈물이 나도 참고 이겨내야 했다.
세상에 태어나 연기 말고 처음으로 하는 일에서 다시 실패를 맛보고 싶지 않았다. 아니 난 실패할 수가 없었다.
'호모새끼가 뭘 하겠어'란 소릴 들을 순 없었으니까  (p. 9 저자의 말 중에서) ]



2000년 어느 날 '부모님을 생각하면 내가 왜 태어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괴로워 하던 그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상에 솔직함으로 고난을 자초했습니다. 커밍아웃을 하면서 말이죠. 고교시절부터 진로를 정하고 좋아했던 연기를 할 수 없게 되자, 레스토랑 사업을 시작합니다. 그렇게 시작한 레스토랑 사업의 경험이 쌓여 이제는 컨설팅까지 해줄 정도로 그는 성장합니다.

이 책은 크게 셋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첫째는 3개의 레스토랑 창업 이야기와 실패담 이야기
둘째는 홍석천의 살아온 이야기
셋째는 자신이 아는 점포들 소개

창업과 가게에 대한 이야기가 반 이상을 차지하지만, 창업에 무관심한 저 같은 사람에게도 배울 점은 많은 책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일상은 실패한 누군가의 것과 같아도 금세 배울 점이 된다는 시각으로 보면 덤덤한 일화들이지만요 . 그래도 제가 배우고 싶은 점을 잠깐 적어두고 넘어가렵니다.


1. 인테리어 공사를 맡길 때

[ 모른다고 아무 생각 없이 업자에게 맡겨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시공이 불가능한 디자인을 무턱대고 우겨서도 곤란하다. 일단은 최대한 발품을 많이 팔아 보고, 당장 본인이 벽돌 들고 공사를 해도 가능할 만큼 머릿속으로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 본 후에 인테리어 업자를 만나야 한다.
손재주가 없다고 해도 대강의 밑그림을 그려 설명을 하거나 꼭 필요한 디자인이 있다면 남의 가게 샘플 사진이라도 몰래 찍어 시공자에게 의뢰를 하는 편이 좋다.

내 마음속에 있는 천국 같은 그림을 그대로 파악하고 공사를 해 줄 인테리어 업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어차피 인테리어 업자는 내가 아닌 타인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최대한 자세하게. 최대한 시시콜콜하게 설명해 주며, 끊임없이 공사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p. 39) ]


여행을 가고, 답사를 해도 항상 소품이며 그림을 챙기는 것이 역시 오너는 다른 모양입니다.

2. 사장의 눈에만 보이는 것들
- 화장실 청결과 휴지, 손님의 테이블 상황, 아이컨택)

3. 싹수 있는 알바생으로서의 경험

- 주인과 같이 외모를 꾸미고 지시받지 않은 서비스도 자발적으로 제공, 팁박스로 동료와 화해

4. 마지막으로 가장 배우고 싶은 점은 자신에 대한 솔직함 입니다.

동성애에 대해
어떤 사람은 과학을 근거로 질병이라고 합니다.
제가 과학은 잘 모르지만, 과학이라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 틀렸음을 증명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것으로 압니다.

어떤 사람은 자연스럽지 못하고 불결하며 병의 근원이라 합니다.
자연스럽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인간이 자연의 모든 것을 따라야 하는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인간이 짐승과 다르다는 것은 왜 말하는 것일까요.

어떤 사람은 말로만 피상적으로 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할 겁니다.
제가 그렇거든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당위적으로 고개만 끄덕일 뿐,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합니다.
먹고살기 바빠서, 익숙지 않아서, 환경 때문에, 등등 이유야 많겠지만 아마 제 옆에 동성애자가 온다면 뱀파이어를 봤을 때보다 더 놀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부족한 저이지만, 그래도 홍석천씨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그간에 겪었을 그의 고통과 그의 솔직함과 당당함에 말이죠.
그리고 그 박수는 솔직하고 당당하고 싶은 저에게 보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김수현 작가가 홍석천에게 해 준 말로 마무리할게요.

[ 그런 변화 속에서 김수현 선생님은 나에게 큰 힘을 주셨다.
역할을 맡기는 걸로 첫 번째 격려를 해 주셨고, 직접 어깨를 토닥이며 응원도 해 주셨다.
김수현 선생님은 "자신을 속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너는 정말 용기 있는 거야. 흔들리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고 격려해 주셨다.  (p. 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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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작가의 말'에서 지은이는 이 책을 소설이라고 합니다.
소설이라니.....
여지껏 이 책을 평전이겠거니 하고 읽었는데 황당했지요.
가만 생각해보면 많은 대화들, 독백, 생각이나 상황묘사가 너무 생생하긴 했죠.
영화 <트루먼 쇼>처럼 일생을 중계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겠다 싶네요.

그래도 저는 평전이라고 생각할래요.
<칼의 노래>나 <불멸의 이순신>으로 이순신 장군을 새로 알아가는 것처럼, 장기려 선생에 대해 이렇게 알아가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요. 후에 <장기려, 그 사람> 이라는 평전을 읽은 후에 사실과 크게 다르다면 소설이라고 번복할 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1. 무엇을 할 것인가


[ 할머니는 늘 그를 위해 기도했다.
"이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에서 크게 쓰임 받는 일꾼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할머니의 바람대로 크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할머니, 죄송해요. 기려는 할머니가 생각하는 그런 일꾼이 되기에는 너무 게으르고 욕심이 많아요.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할머니, 저를 보고 계시다면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세요.' (p. 43) ]


한국의 슈바이처로 존경받는 장기려 선생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네요.
당연히 있을 시기를 당연히 없다고 경시하는 이면에는 다른 블로거님의 말대로 '하늘이 내린 인재'로서의 위인에 익숙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장기려 선생은 서원을 합니다.


[ 그는 두 손을 모아 쥐고 눈을 감았다.
수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또한 수많은 기억들이 먼지처럼 떠돌았다.
그는 포충망을 들고 곤충을 채집하는 아이처럼 그 숱한 생각과 기억들 가운데 지금까지 자신에게 큰 감명을 주었던 것들만 거두어들였다. 맨 마지막에 김주필과 그의 어머니가 기려의 내부로 스며들어왔다. 그것들이 기려의 내부에 들어온 대신, 그의 내부에 고여 있던 눈물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제가 의사가 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때 누군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무엇 때문에 의사가 되려고 하느냐?"

그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만약 제가 의사가 된다면 의사를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습니다."     (p. 80) ]



조금은 유치하기도 그래서 민망하기도한 서원의 장면들조차 감동인 이유는 장기려 선생의 실천이 있기에 그럴 겁니다.
혈액이 필요해서 스스로 무리하게 헌혈을 하고, 사비를 들여 진료비에 보태고, 무의촌 진료에 열을 쏟고, 자신의 잘못이 있으면 간호사에게 무릎 꿇을 줄 아는 선생의 삶이 서원을 보증해줍니다.

나이가 들고 상황이 변하면서 융통성 있게 바뀌게도 마련인 서원.
어린 시절의 그 서원을 바보처럼 계속해서 고민하고 실천하는 선생의 삶이 있기에 소설이라면 유치할 수도 있는 서원의 장면도 마음을 울립니다.


2. 외식하는 자들


[ 그는 병원을 쉬는 날이면 자원 봉사자들과 함께 칠성문 밖 빈민촌과 용산 면의 빈민촌을 찾아갔다. 어떤 목회자들은 그가 주일성수를 지키지 않는다고 힐난했다. 그러면 그는 이렇게 되물었다.

"저는 의사입니다. 만약 당신이 위급한 병으로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데 저와 같은 의사가 주일성수를 이유로 당신에게 오지 않는다면, 그래도 당신은 기꺼이 받아들일 자신이 있으십니까?"     (p. 171) ]


불편한 진실이고, 통쾌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작가의 시선인지 정말 장기려 선생의 시선인지는 작가가 소설임을 시인하면서 알 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함석헌 선생과 가까이 사귀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작가의 시선만은 아닌 듯 합니다.

자신의 신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교리를 정통이라고 믿는 믿음, 의심이나 비판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보고, 남들을 가리키며 이단을 말하는 사람들의 기사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막히고 필요이상 분노하게 됩니다.

이제는 화내지 않으려고요.
이 좋은 책을 읽으면서도 그 '화'가 많은 생각을 가렸거든요.
그리고 저도 제 눈에 어떤 들보가 더 들어있을지 감당할 수 없어서이기도 합니다.

후퇴하는 군인처럼 사람보다 '국가'나 '주의'를 우선시하지는 않는지
김주필의 사례처럼 책임져야 함에도 책임을 미루었는지
한국전쟁 당시의 치안처럼 복수에 눈이 멀어 그걸 정의라고 하는지.
남과 북의 고관들처럼 어떻게든 자기 살 자리 마련에 열을 올리는지.
행동하지 않고 너무나 쉬운 비난을 하지는 않는지.
기도해야겠습니다.

3. 장기려 선생에게 환자란

좋은 구절이라 담아두고자 인용해 봅니다.


[ 그리고 그는 힘들 때마다 의학도였던 시절 스승이 들려주었던 말을 떠올리며 견뎠다.

"왜 아픈 사람을 일컬어 환자(患者)라고 하는지 아나? 환患은 꿰맬 관串자와 마음 심心자로 이루어져 있다네.
상처받은 마음을 꿰매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네. 다시 말해 환자란 다친 마음을 어루만져줄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야.
눈에 보이는 상처는 치유하기 쉽지만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네. 자네가 진정한 의사가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환자의 마음을 고치는 의사가 되어야 하네."
(p. 406) ]


써놓고 보니, 장기려 선생의 업적이나, 빛과 소금 같았던 일생에 대해서는 쓰지 않았네요.
일단 '한국의 슈바이처' 이 말 한 마디로 대신할게요. 그리고 기록이 필요하다 생각되면 <장기려, 그 사람>이라는 평전을 읽고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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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유도 없는 절망에 허우적대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 적어도 다른 사람이 보기엔 - 절망에 허우적댑니다.
포그의 아파트 관리인이 그를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처럼요.

토마스 에핑이 그랬고.
솔로몬 바버가 그랬고.
M. S 포그가 그렇습니다.

외삼촌, 아버지의 죽음이나 재정위기가 원인이라고 하기엔 좀 부족합니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될 수 없는 절망 속에서 세 사람은 허우적댑니다.

마땅한 원인이 없기에 절망의 해결책도 없어 보입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 따위는 없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데,
그런 것 생각할 겨를 없이 바동거리며 살아도 바쁜 삶인데 말이죠.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 욕을 먹어도 한참을 먹을 나약한 그들에게, 배부른 그들에게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끼면서 읽게 되는 이 책은 좀 우울합니다.

읽다가 접은 책이지만 왕멍은 <나는 학생이다>에서 유배생활의 고독과 절망 속에서 미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배움'과 '공부'에 있다고 말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달의 궁전>의 솔로몬 바버와 M. S 포그 역시 책을 읽습니다.
그리고 토마스 에핑은 그림을 그립니다.

그러나 그들을 잠시나마 구원한건 '키티 우'나 '에밀리 포그'에 대한 사랑이었네요.
그리고 '빅터 포그'나 '솔로몬 바버'와 같은 혈육이었습니다.

아무튼 지금 끼적거리고 있는 저도 책을 읽습니다.
부엌에 계란을 떨어뜨리고는 공원에서 노숙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 2 글 쓰는 방법에 대한 작가의 가르침?

우스우면서도, 동질감 느껴지는 포그의 절망에 대한 대처 외에 가장 관심이 가는 대목은
눈 먼 토마스 에핑에게 사물을 설명해야 하는 포그의 깨우침이었어요.
서로 모순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처음 봤을 때에는 무언가 영감을 제공해 주는
것 같아서 인용해 봅니다.

M. S 포그는 토마스 에핑이라는 눈 먼 노인의 비서직을 갖게 됩니다.
책을 읽어주고, 같이 산책을 하면서 거리의 사물을 설명해야 하죠. 그 산책의 첫 날 길 한가운데서 포그는 에핑에게 큰소리를 듣습니다.


 "빌어먹을!"
그가 호통을 쳐댔다.

"그 대가리에 박힌 눈을 쓰란 말이야. 나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는데, 자네는 지금
<흔히 볼 수 있는 가로등>, <아주 평범한 맨홀 뚜껑>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어. 어떤 두 가지 물건도 똑같지는 않아, 멍청이 같으니라고, 어떤 바보라도 그건 알아. 나는 지금 우리가 뭘 보고 있는지 알고 싶은 거야, 빌어먹을! 자네가 나한테 확실히 설명해 주길 바라는 거라고!"  (p. 176)


이래서 포그는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을 보고 그에 대해 말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이죠.
마치 김연수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서 "태어나서 처음인 것처럼 느껴봐." 라고 하는 말처럼 말이죠.
포그는 세 가지 생각을 전해줍니다.


첫째, 아무것도 당연시해서는 안 되었다.

둘째, 긴 설명으로 그를 지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사물을 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내가 말하는 문장들을 단순화하고 본질적인 것으로부터 부수적인 것을 분리할 줄 알아야 한다.

셋째, 나는 어떤 사물 주위로 더 많은 여유를 남겨 두면 남겨 둘수록 그 결과가 더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 178~180)



# 3 가끔은 성공이나 실패의 결과를 잊자

토마스 에핑은 황무지의 동굴 속에서 은신하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다른 이에게 보여주지 않겠다고 결심하면서, 성공과 실패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잊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충만한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해 합니다.

결과나 평가가 머리를 짓누를 때, 잠시 벗어나서 자신에게 충만해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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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로처

티스토리에서 트랙백 보내는 방법


사실 저는 컴맹에 가깝습니다.
저희 집 컴이 노환으로 골골 거려도 가끔 묵념이나 해 줄 뿐, 아무런 대처도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트랙백 거는 방법>에 대해 아는 척을 할 필요가 생겨서 이리 글을 쓰네요.

스샷과 그림판으로 어찌어찌 이미지도 첨부해 봤습니다.
보시기에 발로 한 작업 같으시죠?
아니랍니다. 손으로 했고, 나름 끙끙거리면서 시간도 들여서 했네요.
모르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1 트랙백을 보낼 블로그를 방문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눈먼 자들의 도시>에 대해 이미 포스팅을 하였고, 같은 책에 대해 글을 쓰신 Greenbea 님의 블로그 에 트랙백을 걸고자 합니다.

Greenbea님 블로그 바로가기

방문하신 블로그 글의 맨 밑을 보시면 아래의 그림처럼 나와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2 트랙백 보내실 블로그의 트랙백주소 복사

빨간 네모가 그려진 <트랙백> 이라는 항목을 클릭합니다.

그러면 아래처럼 트랙백을 보내실 주소가 나옵니다. 그걸 일단 복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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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자신의 블로그에서 트랙백 항목 클릭

자 ! 그럼 이제 자신의 블로그를 살펴봅니다.

<로처의 사랑방> 이라는 제 블로그에서 '눈먼 자들의 도시' 포스팅을 찾습니다.

그리고 글 제목 밑을 보면 '트랙백' 항목이 보입니다. 아래처럼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 4 아까 복사했던 주소를 입력하고 전송

'트랙백' 항목을 클릭하면 아까 복사해 두었던 Greenbea 님의 트랙백 주소를 입력하는

곳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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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아까 복사했던 Greenbea 님에게 보낼 트랙백 주소를 입력하고 전송버튼을 살포시
누르면 트랙백 전송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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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로처


<실패의 향연> 작년에 재미있게 읽은 책 제목입니다.
<빵굽는 타자기> 이 책의 주인공은 말 그대로 '실패의 향연'을 벌입니다.
시작부터 자신의 과거가 실패의 잔치였음을 그 이유와 함께 고백합니다.


[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 나는 손대는 일마다 실패하는 참담한 시기를 겪었다.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고, 글 쓰는 일은 수렁에 빠졌으며, 특히 돈 문제에 짓눌려 허덕였다.
이따금 돈이 떨어지거나 어쩌다 한번 허리띠를 졸라맨 정도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노상 쩔쩔맸고, 거의 숨 막힐 지경이었다. 영혼까지 더럽히는 이 궁핍 때문에 나는 끝없는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모두가 내 불찰이었다.
나와 돈의 관계는 늘 삐그덕거렸고, 애매모호했고, 모순된 충동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 문제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은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내 꿈은 처음부터 오직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  (p. 5)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 그의 실패담으로 가득합니다.

1. 젊은 시절

이 시절의 주인공은 영화 <타이타닉>의 주인공 '잭 도슨'과 비슷합니다.
다리 밑에서 자고, 쥐와 함께 3등 객실에서 생활하면서도 그림에 대한 꿈을 잃지 않는 '잭 도슨'.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들 앞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당당한 '잭 도슨' 처럼 살아갑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족부양의 책임도 없이, 젊음 하나로 자신만만하던 시절에는 실패의 짐도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글 쓰는 일을 위해, 꼭 필요한 돈만 있으면 되던 시절입니다. 그만큼의 돈벌이도 버겁긴 했지만요.

시키는 대로 작성만 하면 될 '시청각자료 아르바이트'는 민주제와 공화제의 차이점이 크다는 자신의 주장을 이해 못하는 사장과의 불화로 20분 만에 때려치웁니다. 웨이터, 시설정비, 유조선 선원, 호텔직원의 일들도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 없이 잘 하죠.
스스로 실패자를 위한 상을 제정하여 공모하는 치기도 부려봅니다. 이렇게 좌충우돌 살아가면서도 글 쓰는 일은 놓지 않습니다.


[ 프랑스에서 살았던 3년 반 동안 나는 수많은 직업을 전전했다.
프리랜서로 얻은 시간제 일자리를 몇 탕씩 뛰느라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서 얼굴이 파래질 정도였다.
일감이 없을 때는 일을 찾아다녔다. 일감이 있을 때도 더 많은 일을 찾을 방법을 궁리했다. 가장 잘 나갈 때에도 마음을 놓을 만큼 돈을 번 적이 없지만, 한두 번 위기를 맞긴 했어도 파산만은 용케 면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흔히 하는 하루살이였다.

그런 생활 속에서도 나는 꾸준히 글을 썼고, 대부분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지만 그래도 일부는 살아남았다. 좋은 싫든, 1974년 7월에 뉴욕으로 돌아왔을 때는 글을 쓰지 않는 생활은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   (p. 93, 94)



곧 이 좋은 시절은 지나가죠.
주인공은 나이가 들고, 아들의 아버지가 되고, 가장이 됩니다.

2. 가장이 된 후의 시절

이제 '생계를 위한 시간'과 '자신을 위한 시간'의 균형은 맞추기 힘들어집니다.


[ 1977년 말쯤에는 덫에 걸린 짐승처럼 필사적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있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돈 문제를 회피하면서 평생을 보냈는데, 이제 갑자기 돈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기적 같은 역전을 꿈꾸었다. 복권에 당첨되어 수백만 달러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따위의 일확천금을 꿈꾸며 터무니없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중략>

시간을 얻기에는 일을 너무 많이 했고, 돈을 벌기에는 일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이제 나는 시간도 돈도 갖고 있지 않았다. ]   (P. 146)



그가 쓴 희곡은 '존 마이어'라는 절대적인 지지자의 성원에도 실패로 끝납니다.
스스로 개발한 '액션 베이스볼' 이라는 카드게임은 그의 기대와는 반대로 나락의 기분을 안겨준 채 끝납니다.
불면의 밤을 지내며 문득 생각난 기막힌 탐정추리소설도 구석에 쳐 박히게 됩니다.

그러다가 그 탐정추리소설로 900달러를 벌면서 실패의 추억은 끝이 납니다.

실패로 가득한 책임에도 꽤나 재미있습니다.
결국엔 성공한 작가가 될 테니, 실패의 쓰라림이 아닌 좋은 추억으로의 달콤함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가 담담한 필치로 실패의 암울함을 덜어내어서 일까요?
것도 아니면, 남의 실패이기 때문에 - 그것도 지나간 - 일까요?
혹은, 꼬장꼬장한 자존심 잃지 않고 꿈을 지켜내며 살아가는 주인공에 대한 응원 때문일 수도 있겠네요. 이유는 알 수 없네요.

아무튼, 저는 추억으로 재구성되고 미화된 성공담보다는 쓰리지만 진솔해 보이는 실패담이 더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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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로처

<인생>, <허삼관매혈기>, <형제> 를 꽤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에게 두 작가의 우열을 가릴 권한도, 능력도 없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를 추천해준 친구에게

"하루키 얘기는 나하고는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얘기를 하면서 "난 위화가 좋더라."고 얘기했죠.

속된 말로 '위화빠' 정도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작 3편을 읽었지만요.
그랬기에 '위화 산문집'이라는 부제를 달고 출간된 <영혼의 식사>를 망설임 없이 집어 들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싶은 마음에서였습니다.
조금이라도 작가의 일상이나 생각들을 알고 싶어서였죠.

그런데 다 읽고 난 지금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왜 이리 허망한지요.
당혹스럽습니다.
이 허망함과 당혹감은 전염성이 있는지, 다른 책을 읽어도 아무것도 쓰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쓰는 글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끼적임에 불과했는데도 그것도 못하겠다니 환장할 노릇입니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바라고 이 책을 집어 들었던가?"
"무얼 기대했던가?"

무엇엔가 쫓기듯, 읽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책을 기계적으로 집어 들었던 것이 탈인가 봅니다.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꾸역꾸역 읽어 온 것이 체했나 봅니다.
어느 블로거의 말대로 '급조한 느낌'의 이 책에 대한 실망보다는, 저 스스로가 바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읽은 이유와 체한 머릿속의 헛헛함을 느끼는 이유로 이 책은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 적어도 지금의 저에게는 말이죠.
그래서 작가의 서문을 모아놓은 3편은 읽지 않았습니다.
각 소설을 읽을 때는 너무나도 좋아했던 서문임에도 모아놓으니 싫어지네요.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어떤 것도 끼적일 수 없을 것 같더니 주절대고 있는 새에 두 가지 생각이 남네요.

그 하나는 '아이, 두려움과 마주치다.' (p. 37)

위화의 아들 로우로우(漏漏)는 자신의 똥과의 첫 만남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웁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마지막으로 비행기 안에서 두려움을 느끼죠.
비행기 안에서는 이렇게 두려움을 표현합니다.

"사람 살려, 살려주세요."

귀엽죠? 위화는 이런 말을 하네요.

이런 형태의 두려움은 늘 혼자 극복할 수 있고, 그럴 때마다 내면의 성장을 얻을 수 있다.
세계에 대한 녀석의 이해, 그러니까 진정으로 자신에게 해당되는 것들에 대한 이해는 부단한 공포와 극복을 통해 완성된다. 녀석이 어른이 될 때까지, 심지어 백발이 성성할 때까지 이런 두려움이 그와 동반할 것이다. 마치 어린 시절부터 나와 함께했던, 나뭇가지가 달빛에 모습을 드러내며 빛을 발할 때 느꼈던 공포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p. 39, 40)


지금 나와 함께하는 두려움은 무얼까 생각해 봅니다.
갑자기 떠 오르는 것은 없지만, 꽤나 많을 겁니다.
창피해서 여기에 적을 수는 없지만, 한 번 정리해 봐야겠습니다.


두 번째는, 길거리에서 울고 있는 노인의 모습 입니다.


하루는 아내 천홍과 함께 베이징의 왕푸징 거리를 걷고 있다가 갑작스런 광경에 경악하고 말았다. 왁자지껄한 인파속에서 갑자기 반듯한 복장을 한 노인이 눈물을 쏟으며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것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들뜬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불행을 그렇게 솔직하게 표출하는 그의 얼굴에는 두려운 기색이 가득했다. (p. 147)


내 마음은 눈물을 잊은 지 오래입니다.
김광석의 노래 <타는 목마름으로>의 첫 구절처럼 말이죠.

행복한 표정으로 가득한 거리에서 소리 내어 우는 사람을 만나면 얼마나 당혹스러울까요.
신문과 기사는 불행의 표지로 가득하고, 거리는 행복한 얼굴로 가득합니다.
불행한 이들은 모두 숨어있는 건가요. 행복한 얼굴은 거리의 통행증인가요.

짐 캐리의 <YES 맨>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나 조엘 오스틴 목사의 <긍정의 힘> 같은 책들이 흩뿌려지고 있는 시대에 우리의 눈물은 겉으로 나오지 못하고, 맘속에서 고여 썩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봅니다.

눈물도 소통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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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로처

1. "그래서 어쩌라고!"

<좋은생각>, <배꼽>,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시겠죠?
책 뒷장에 이렇게 써 있네요. '101가지 지혜의 샘'이라고요.

네!
이 책은 위에 말씀드린 책들처럼 담아두고 싶은 얘기들, 좋은 얘기들이 잔뜩 실려 있습니다.
이미 들어서 아는 얘기, 읽어서 아는 얘기들도 잔뜩 있지요.
아래와 같은 얘기들처럼요.

<연필 같은 사람>

"연필에는 다섯 가지 특징이 있어. 그걸 네 것으로 할 수 있다면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게야.

첫 번째 특징은 말이다, 네가 장차 커서 큰일을 하게 될 수도 있겠지? 그때 연필을 이끄는 손과 같은 존재가 네게 있음을 알려주는 거란다. 명심하렴. 우리는 그 존재를 신이라고 부르지. 그분은 언제나 너를 당신 뜻대로 인도하신단다.

두 번째는 가끔은 쓰던 걸 멈추고 연필을 깎아야 할 때도 있다는 사실이야. 당장은 좀 아파도 심을 더 예리하게 쓸 수 있지. 너도 그렇게 고통과 슬픔을 견뎌내는 법을 배워야 해. 그래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게야.

세 번째는 실수를 지울 수 있도록 지우개가 달려 있다는 점이란다. 잘못된 걸 바로잡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오히려 우리가 옳은 길을 걷도록 이끌어주지.

네 번째는 연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외피를 감싼 나무가 아니라 그 안에 든 심이라는 거야. 그러니 늘 네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렴.

마지막 다섯 번째는 연필이 항상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이야.
마찬가지로 네가 살면서 행하는 모든 일 역시 흔적을 남긴다는 걸 명심하렴. 우리는 스스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늘 의식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란다." (p. 30)


그리고 <칭기즈칸과 그의 매> 라던가 <고독한 불씨>등의 얘기들은 많이들 아실 겁니다.
이 외에도 작가 자신의 경험담과 친구들의 경험담도 꽤 좋은 얘기들입니다.
실은 너무 좋아서 다 옮겨 적고, 암기하고 싶을 정도랍니다.

그러나 좋은 얘기들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좋은 말이지만,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말인 것처럼요.
이런 생각에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심사로 뿔이 나기도 했죠.
'참말로 좋다.'는 생각과 '그래서 어쩌라고.'하는 심사 사이에 있는 책입니다.


2. 그래도 믿고 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미지 출처 : MBC 홈페이지>


드라마 <허준> 얘기를 또 하게 되네요.
MBC 드라마 <허준>은 당시 많이들 좋아하신 드라마입니다.

극중에서 허준은 고지식할 정도로 정직하고, 답답할 정도로 원칙을 지키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래서 손해보고, 그래서 상처받고, 그래서 내쳐지고,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빙 돌아서 갑니다.

"아이구 등신!" 이란 말을 하면서 보신 분들이 적지 않을걸요?
그러먼서도 속으로 응원하면서 보게 됩니다.
그런 사람이 잘 되길 응원하게 됩니다.

파울로 코엘료라는 작가에 대해서 저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가 하는 좋은 얘기들 믿고 싶습니다. 아니, 믿어야 제가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쇼핑몰에서 신명을 다해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를 닮고 싶어서입니다.
돌 치우고, 돈벌이 하는 인부가 아니라, 교회를 짓고 있는 인부이고 싶어서이고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을 한 어린구름이고 싶어서이기도 하죠.
이렇게 되기 위해 구겨지고 짓밟혀도 변함없는 가치를 가진 20달러 지폐처럼 굳건해야겠죠.
그래서 파울로 코엘료의 기도를 저도 해봅니다.

주여, 우리의 의심을 지켜주소서. 의심 또한 기도하는 한 방법입니다.
의심은 우리를 성장하게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의 문제에 대한 많은 답들과 두려움 없이 마주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p. 159)


뱀발 : 파울로코엘료는 '신에게 이르는 길은 오직 하나다.'라는 것을 근거 없는 믿음이라 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위험하다고 하죠. 과연 한국의 개신교에게 이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이단일 뿐인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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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로처